"아가씨, 귀국을 환영합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태연한 표정으로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롱 코트를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선글라스가 그녀의 절세미모라고 불릴 만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카리스마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이윽고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즉시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유진아, 공항에 도착했느냐?" 휴대폰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 어르신, 굳이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절 마중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전설 속의 암흑가 큰 아가씨가 돌아 왔다는 걸, 사람들이 모를까 봐 걱정하시는 거에요?" 미간을 찌푸린 김유진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 섞여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환영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하, 암흑가 대부의 유일한 후계자인데, 이 정도 체면치레는 당연한 거 아니냐?"
김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찾기 위해 귀국한 거에요. 그러니 조용하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 신분이 노출되면 안되니까요."
"그래,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다 준비해 놨다." 휴대폰 너머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유진이 고개를 돌려 앞쪽을 바라보았다. 롤스로이스 컬리넌 한대가 천천히 다가와 멈춰 서더니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리려 공손하게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 올라탄 김유진이 다리를 꼬고 앉아 물었다. "그래서, 뭘 준비해 놨다는 거예요?"
"곧 알게 될 거야."
"네? 그게 슨 말이에요?"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게 자료를 보냈어."
통화를 마치자 김유진의 휴대폰에 자료가 도착했다.
[김유진, 김씨 가문에서 어릴 적 잃어버린 막내아들. 수년간의 수소문 끝에 김씨 가문은 드디어 막내 아들이 여씨 가문에 입양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됨. 다만 여씨 가문은 원수의 보복으로 가문 전체가 몰살당했고, 김씨 가문의 막내 아들만 살아남음.]
자료를 읽은 김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때, 둘째 어르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네 아버지의 죽음은 김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같더구나. 유진아 지금부터 넌 김씨 가문의 막내아들 김유진이야.]
바로 그때, 김유진의 동공이 수축했다. 갑자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운전기사를 쳐다보았고 운전기사는 그녀를 향해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운전기사는 갑자기 핸들을 꺾었고 질주하던 롤스로이스 컬리넌은 그대로 길가의 가로수에 충돌했다.
강한 충격에 김유진은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앞이 캄캄해 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유진아, 괜찮아? 형 놀라게 하지 마."
다급한 목소리에 김유진은 바로 눈을 떴고 그 즉시 걱정이 가득 담긴 한 쌍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당신은..."
"난 네 형이야."
김유현은 김유진의 손을 꼭 잡고 흥분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진아, 둘째 형이 미안해.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네가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둘째 형?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했다고?'
잠시 멍하니 있던 김유진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김씨 가문의 둘째 김유현이고 그녀의 현재 신분은 김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막내 아들 김유진이다.
"유진아, 어디 아픈 거 아니지?"
김유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유현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머리가 조금 아플 뿐이에요."
그렇다,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자인 자신은 지금부터 남장을 하고 김씨 가문의 막내 아들 행세를 해야 했다. 아무리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라지만 이건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그녀는 김씨 가문이 막내 아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뼈도 못 추릴 게 뻔했으니 말이다.
"의사 선생님!"
김유현은 김유진의 상태가 걱정되어 얼른 의사를 부르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사이, 김유진은 슬쩍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C컵이었던 가슴은 붕대로 단단히 압박하고 있어 A컵이 되어 버렸고, 가슴을 옥죄는 듯한 갑갑한 느낌에 그녀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고 긴 생머리였던 머리카락도 어느새 짧게 잘려있었다.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위풍당당한 암흑가의 큰 아가씨가 한 순간에 남자가 되어버렸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녀의 원수들은 아마 배를 끌어 안고 그녀를 비웃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 제 동생이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어서 진찰해 주세요."
김유현은 의사를 끌고 다급하게 병실로 들어왔다.
의사는 김유진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동공을 확인하고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유진씨. 심폐기능을 확인해야 하니 윗옷을 걷어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