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진 씨, 형기가 만료 되었습니다. 밖에 마중 나온 사람이 있네요."
교도관의 싸늘한 목소리가 면회실에 울려 퍼졌다. 마침 출소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를 작성하고 있던 김이진의 펜촉이 잠시 멈칫했고 새하얀 종이 위에 잉크 자국이 번졌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철창 너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김씨 그룹의 둘째 아들 김이준, 그녀의 둘째 오빠였다. 적어도 혈연 관계상으로는 그랬다.
"아버지, 어머니가 널 데려오라고 하시더라." 김이준은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파텍 필립 시계가 면회실의 창백한 조명 아래 차갑게 반짝이고 있었다.
"3년 동안 고생했어. 집에서 섭섭지 않게 보상해 해줄 거야."
'보상?'
김이진은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전생과 똑같은 대사...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전생, 김씨 가문 사람들의 구슬림에 김이진은 양녀 김이원을 대신해 감옥에 갇혔다.
3년간의 수감 생활이 끝나는 당일, 그들은 코뺴기 조차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김이원이 보낸 건달들에게 능욕당해 죽게 내버려 두었다.
그녀가 죽은 후, 김씨 가문은 즉시 그녀를 족보에서 제명했고, 유골조차 거두려 하지 않았다.
그야 말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혼은 오랫동안 이승을 떠돌았고 더욱 잔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아이가 바뀌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가족을 잡아 먹을 팔자.' 라는 점쟁이의 말에 그녀의 친 부모라는 사람들은 글쎄 그녀와 사주가 좋은 김이원과 바꿔치기 했고 그녀를 자생자멸하도록 시골에 내버려 두었다.
원한이 너무 깊었던 탓일까, 그녀는 감옥에 갇힌 지 3년이 되는 날로 회귀했다.
새로 시작한 인생. 그녀는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여 재계의 거물인 서지혁과 비밀리에 협력을 달성했고 덕분에 오늘, 일찍 출소 할 수 있게 되었다.
"3년 전, 날 김씨 가문에 데려 갈 때도 보상해 주겠다고 했었지."
김이진은 펜을 내려놓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근데 결과가 뭐였지?" 김이원의 사기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갇혔고 심지어 감옥 밥에서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섞여 나왔어."
김이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이원이는 몸이 약해서 수감 생활을 버틸 수 없었다고." 넌 우리 김씨 가문의 핏줄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그년 대신 수감생활 해야 한다?"
"김이준, 너희 김씨 가문은 단체로 미쳐버린 거니? 남을 위해 친딸을 핍박해?"
"너 말버릇이 그게 뭐야!" 김이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이진, 교양은 다 어디로 배워먹었어? 감히 이원이를 욕해?"
'교양?' 김이진은 눈물이 다 날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
친 부모라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시골에서 동냥밥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디서 교양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짐이라고는 전부인 희게 바랜 초라한 천 가방, 그녀는 가방을 챙겨 면회실 문을 열고 나섰다.
"거기 서!" 김이준이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멈춰 세웠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디로 갈 생각이야?"
김이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가야 할 곳."
교도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초여름의 눈부신 햇살이 그녀의 눈을 찔렀다. 3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보니 그녀는 햇살에 온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때, 순 검은색 마이바흐가 그녀의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이어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김이진 아가씨 되십니까?
서지혁 대표님 지시로 모시러 왔습니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공손하게 그녀를 위해 뒷죄석 문을 열어주었다.
김이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망설임 없이 차에 올라탔다.
백미러를 보니 그녀를 쫓아 교도소 대문을 나선 김이준이 보였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 진 채 수십 억대의 고급 세단이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