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늘은 예의상 먼저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임하늘이고, 28살이에요. 현재는 통역 일을 하고 있어요."
이우진은 눈앞에 앉은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것 같았으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청순하면서도 차가워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그의 시선이 그녀의 눈가에 있는 작은 점에 고정되었고 그 순간, 그의 가슴 속에 파문이 일었다...
그렇게 둘은 자기 소개를 마쳤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선 자리에 나온 건 처음이라 임하늘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우진의 쌀쌀맞은 태도에 그녀는 더 이상 그와 대화를 이어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그녀가 물을 한 잔 마시는 동안, 이우진은 여전히 의자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늘보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임하늘은 관자 놀이가 지끈거렸다. 결국 그녀가 먼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 코치님, 조건이 꽤 괜찮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선을 보는 거에요?"
"눈이 높아서요."
"…" 임하늘은 어이가 없었다. "아, 그래요? 집에서 재촉해서 억지로 선을 보러 나온 줄 알았어요."
"맞긴 해요." 이우진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가 그러는데, 제가 선을 보러 나오지 않으면 가슴 속에 한이 맺힐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뭐야? 이렇게 솔직하다고?' 그녀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무심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선 자리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운이 좋으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돼요. 그것도 안 되면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면 되죠."
'말도 안 되는 소리.'
임하늘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 코치님은 선을 많이 보신 것 같네요?"
"글쎄요?" 이우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백 번 정도는 본 것 같은데요?"
"…" 임하늘은 이우진이 너무 경박한 것 같았고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 코치님, 저희는 성격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진지하고 믿음직한 남자가 좋아요." 어쨌든 같은 마을에 살고 있으니, 임하늘은 최대한 그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돌려 말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저는 지금 직장을 잃어 실업 상태고 사기를 당해 빚까지 지고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저는 이 코치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모쪼록 이 코치님도 빨리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길 바랄게요."
이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임하늘은 그가 외투를 챙겨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고 근육질 몸매는 딱 봐도 힘이 느껴졌다.
이 작은 마을은 물론이고, 대도시에서도 그의 몸매와 외모는 훌륭한 편에 속했다.
아쉽게도 임하늘은 그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박한 남자는 싫어요.] 결국 그녀는 선 자리를 주선해준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 이우진을 거절했다.
1월의 바람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마을 거리 양측의 가로수엔 화려한 등이 걸려 있었고 오랜 만에 느껴보는 명절 분위기가 낯설고도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무려 8년 동안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올해는 정말 운이 없는 한 해야.'
상반기에는 회사에 갑자기 나타난 낙하산이 그녀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던 부사장 자리를 빼앗아 갔고, 하반기에는 직장 동료의 해코지로 인해 업무 중에 실수를 범하고 말았고 결국 해고당했다.
심지어 연말에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모아 두었던 돈까지 전부 날렸다.
대도시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월세를 낼 돈이 없었고, 더 큰 이유는,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남자가 지난주에 약혼을 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온 다음 날, 그녀는 이모 안미진에게 등 떠밀려 선 자리에 나왔다.
그래서 방금 전의 그 어색한 선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삼촌인 주강혁과 이모의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목 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오래된 아파트인 탓에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아무리 이우진이 조건이 괜찮다고 해도 그렇지! 하늘이가 돌아오자마자 선을 보게 하다니! 이우진은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았어. 뭔가 문제가 있는게 분명해!"
"당신 조카가 말도 없이 갑자기 사표를 내고 돌아 온 거잖아. 심지어 당분간 떠나지 않겠다고 했어!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우리 집에서 밥만 축내겠다는 거잖아? 나는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먹여 살릴 생각이 없어."
"하늘이는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우리한테 돈 한 푼도 요구한 적 없어! 이번에 돌아오면서 우리한테 옷이랑 선물도 사 왔잖아. 당신은 하늘이 이모야, 하늘이를 좀 너그럽게 대해주면 안 돼?"
"주강혁, 예전에 당신이 임하늘을 고아원에서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난 동의했어! 그 정도면 너그러운거 아니야? 게다가 걔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서 공짜로 먹고 자랐어. 우리한테 효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심지어 걔 이제 곧 30살이야. 곧 노처녀가 될 거라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주제에 결혼도 하지 못했어! 대체 무슨 낯짝으로 돌아 온 건지 모르겠어!?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야. 아무튼 나는 그런 굴욕을 절대 감당할 수 없어."
"그리고 우리 집에 방이 두 개밖에 없잖아. 올해 지윤이 부부가 명절을 보내러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 임하늘은 밖에서 지내든가, 아니면 선을 보고 남자 집으로 가든가 해야 해. 우리 집에는 걔가 지낼 곳이 없어…"
문 밖에 선 임하늘은 이 상황이 익숙했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환영 받지 못하는 외부인이다.
마음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서자, 안미진은 여전히 화난 얼굴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선 자리를 주선해준 최 아줌마한테 들었어, 이코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네 주제에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야? 대체 뭘 믿고 눈이 그렇게 높은 건지 모르겠어! 여자는 28살이 지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도시에서 몇 년 지냈다고 진짜 도시 사람이 된 줄 알아? 그나마 예쁜 얼굴이라도 남아 있을 때 빨리 시집가. 이모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최 아줌마한테 남자 몇명 더 소개해 달라고 해야겠어, 너 내일도 선을 보러 가!"
"안미진, 적당히 해! 우리 하늘이가 얼마나 훌륭한데…"
"삼촌."
임하늘은 자신 때문에 시작된 이 말다툼을 끝내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삼촌의 말을 잘랐다. "저 선을 보는 게 싫지 않아요. 만약 선 자리를 통해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죠."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은 그녀는 억지로 떠올렸던 미소를 지우고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통증이 천천히 온몸으로 퍼졌다. 급기야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잔뜩 맺혔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베개 밑에 숨겨둔 약을 꺼내 몇알 삼킨 후, 지친 몸으로 침대에 쓰러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었다. 친구 신청이 하나 와 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검은 연기였고, 음산한 분위기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임하늘은 친구 신청을 수락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누구세요?]
30초 후, 상대방의 답장이 도착했다.
[경박한 이 코치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