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맹목적이야.” 민강윤은 한 남자를 후회없이 3년 동안 사랑했다. 노력만 하면 그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의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아름답고 순진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배연희가 돌아오면서 민강윤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이혼합시다.” 이혼을 한 다음날 뉴스에 그녀에 관한 소식이 퍼졌다. “그 부자집 따님이 이혼을 했다고? 그럼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는 것인가?” 수많은 잘생기고 돈 많은 젊은 남자들이 벌들이 꿀을 따듯 민강윤에게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김태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 다시 결혼할까?” 민강윤은 다시 기회를 줄까요?
늦은 밤이었다.
민강윤은 잠결에 뒤척이고 있었다.
몸 위에 있는 남자의 압박으로 그녀는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침내 무슨 일인지 깨닫게 되자 그녀는 겁에 질려 눈을 번쩍 떴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는 몸 위에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태훈아, 당신이야?"
그의 답은 "끙" 하는 신음소리 뿐이었다. 독한 술 냄새가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다른 소리 없이 마치 그의 삶이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해서 그녀에게 박아 넣었다.
민강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그의 열정적인 공격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의 움직임은 더욱 광란적으로 변해 갔고 그녀는 고통과 쾌락이 섞인 이 기묘한 감각을 견뎌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기치 못한 사건의 전개에 그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결혼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그녀의 남편인 김태훈은 그녀의 몸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치 욕구가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 결혼은 그의 할아버지 강요하에 완성 되었기 때문에 김태훈은 항상 그녀를 원망하며 차갑게 대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을 바꾸게 한 원인이 무엇이든 민강윤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강력하게 자신을 점유하고 간절히 자신을 원하는 김태훈의 반응에 그녀는 너무 기뻤다.
몇 시간이 지난 뒤 김태훈은 마지막 신음을 내뱉고 기진맥진해 그녀의 몸 위로 쓰러졌다. 창문을 통해 달빛 한 줄기가 들어와 그의 옆얼굴을 완벽한 예술품처럼 그려냈다.
민강윤은 서서히 느려지는 그의 심장박동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져 그녀의 마음 속 아주 조그마한 곳에서는 이것이 꿈이 아닌지 의심했다.
만약 이게 정말 꿈이라면 그녀는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태훈아." 그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탐욕적으로 느끼며 뜨겁고 끈적이는 애정을 담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훈아, 나..."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서 꺼내기도 전에 그가 취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연희야..."
민강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치 냉수가 가득 담긴 물통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진 것 같았다.
김태훈이 이렇게 열정적인 것은 그저 그녀를 다른 여자로 착각한 것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가 부른 여자의 이름은 배연희였다. 마음속에 줄곧 품고 아껴온 첫사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때문에 지금까지 그녀는 해외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로 어제, 배연희가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민강윤에게 명백히 도발하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 돌아왔어. 김 씨 집안에서 네 자리는 곧 사라질 거야."
"나랑 태훈이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어. 서로에 대한 깊은 감정을 당신 고작 몇 년의 노력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아? 주제 파악하고 고아원으로 돌아가. 그곳이 네가 있을 자리니까."
"태훈이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도 잘 알 거야. 네가 침대에 맨 몸으로 누워 있더라도 분명히 그는 내 이름을 부를 거라고. 민강윤, 태훈에게 있어서 넌 영원히 내 그림자로만 살아갈 수 밖에 없어."
그림자?
민강윤은 김 씨 할아버지가 택한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는 김태훈의 아내, 김 씨 집안의 사모님이었다. 그녀는 그 누구의 그림자도 아니다.
그녀는 김태훈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다른 여자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배연희의 비웃음이 민강윤의 머리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현재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김태훈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손을 꽉 쥐었다. 몸 속을 타고 흐르는 슬픔과 분노에 몸을 떨었다.
민강윤은 지금껏 내내 김태훈에게 순종적이며 복종적이었고 좋은 아내였다. 남편을 돌보는 데 헌신할 수 있도록 심지어 일까지 그만뒀다.
그리고 속물적이고 거들먹거리는 남편의 가족으로부터 학대와 굴욕을 견뎌왔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녀의 가난한 배경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으며 그녀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수를 많이 썼다. 민강윤은 이런 사소한 문제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슬픔을 삼키며 힘들게 버텨왔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겸손하게 행동했지만 모든 것이 그의 헛수고였다.
꼭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짓밟고 그녀에게 남은 최후의 존엄과 자존심을 빼앗아야 했을까?
남은 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민강윤은 날이 밝아질 수록 정신이 점점 맑아지며 이렇게 그녀는 밤새 눈을 뜨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김태훈은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에 깨어났다.
그가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뜨자 눈 앞에 민강윤이 등을 돌리고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젯밤의 기억이 밀려오자 자신이 한 짓을 깨달은 그의 몸이 싸늘해졌다. 그는 입 꼬리를 올려 조소를 띄우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민강윤은 김태훈에게서 나오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계속해서 스킨케어 단계를 따라 화장품을 발랐다. 그 다음 순간 그녀의 손목은 단단한 손아귀에 붙잡혀 강제로 일어서게 되었다.
그녀의 손에서 소량의 크림이 미끄러져 내용물을 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민강윤은 고개를 들어 김태훈을 쏘아봤다. 그녀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지만 그의 눈을 마주치자 어쩔 도리 없이 심장이 아파왔다.
"나한테 약을 먹여서 강제로 동침을 하면 내가 당신을 인정할 줄 알았나?" 그는 그 말을 내뱉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목을 더욱 단단하게 쥐었다.
한 순간, 너무 무섭고 날카로워 보였다.
'하지만... 약을 먹이다니?'
민강윤은 쓴웃음을 보였다. "당신은 정말 내가 그렇게 비열한 방법을 쓸 여자처럼 보여?"
김태훈은 반감을 드러내며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나와 결혼하기 위해 우리 할아버지한테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 순진한 척 그만 해. 당신 같은 뻔뻔한 여자는 연희와 비교도 안 돼!"
'뻔뻔한 여자? 순진한 척?'
그러니까 그의 마음속에 그녀는 이렇게 볼 품 없고 미천한 것이었다.
그에게 약을 먹일 생각이었다면 그녀는 이미 한참 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기다리며 3년 동안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괴롭힘으로 괴로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김태훈은 그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민강윤은 그제서야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하라는 모든 일을 성심성의껏 해왔는데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염치없이 버틸 필요가 없었다.
민강윤은 이를 악물고 그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그녀는 턱을 들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태훈, 이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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