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정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문 쪽을 바라봤다. 역광 때문에 흐릿하게 보였지만, 익숙한 실루엣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유정아!"
언니다!
언니가 소유정을 향해 달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언니…"
입을 벌린 소유정의 목이 너무 말라 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고,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서워하지 마. 언니는 괜찮아."
소선주는 재빨리 동생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눈시울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소유정이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소선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와 함께 유씨 가문에 시집갈래?"
"유씨 가문은 손꼽히는 부자 집안이야. 그 집 아들 둘 중 한 명은 32살이고, 다른 한 명은 24살이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야…"
유씨 가문은 해성에서 제일가는 재벌 가문이다. '그런 가문에서 어떻게 나와 언니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새아버지의 사업은 유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소선주의 갑작스러운 말에 소유정은 멍한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언니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언니는 절대 자신을 속이지 않을 터였다.
'유씨 가문으로 시집가는 게, 그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언니, 나도 언니와 함께 갈래. 언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거야."
그렇게 사흘 후.
유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 소유정과 소선주를 병원에 데려가 건강 검진을 받게 했다.
소유정은 언니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자신은 유씨 가문의 둘째 아들인 유동준과 결혼하고, 언니는 유씨 가문의 큰아들인 유성훈과 결혼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유씨 가문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시집간 후 3개월의 시험 기간이 있었고, 시험 기간 내에 그녀와 언니가 임신을 해야만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유씨 가문의 며느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소유정은 너무나 두려웠다.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자신이 곧바로 시집가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니.
유성훈은 성격이 차갑고, 유동준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 바람둥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검진을 기다리는 동안, 언니는 잠시 화장실에 갔고 복도에는 소유정 혼자만 남았다.
그때, 그녀들을 병원에 데려온 사람이 급하게 다가왔다.
"소유정 씨, 검사 결과는 병원 측에서 유씨 가문으로 보낼 겁니다. 아무 문제 없다면 오늘 밤 두 대의 차가 소유정 씨와 소선주 씨를 두 도련님의 저택으로 모실 겁니다. 혼인 신고는 내일 할 예정입니다. 유씨 가문 큰 도련님의 차 번호는 1324이고, 둘째 도련님의 차 번호는 1234입니다. 잘 기억하셨죠?"
소유정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항상 언니의 보호 아래 자라왔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유씨 가문의 차가 저택 앞에 나란히 멈춰 섰다.
작고 마른 몸의 소유정은 경호원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더라? 1324…1324…'
'1324 번호판이 둘째 도련님의 차량일 거야. 1234 번호판이 더 좋으니, 당연히 큰 도련님의 차량이겠지.'
소유정은 1324 번호판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떨며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소선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두 대의 차를 번갈아 쳐다봤다. 무언가 이상한 듯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곧바로 다른 차량으로 올라탔다.
어두운 밤, 두 대의 검은색 세단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소유정은 자신의 행동이 느려 상대방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소유정 씨, 유 도련님의 침실은 3층 첫 번째 방입니다."
소유정은 유동준의 저택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저택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치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웠다. 계단 쪽만 은은하고 따뜻한 불빛이 주변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침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간 소유정은 침실 환경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먼저 몸을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 기다려야 해. 절대로 유동준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어서는 안 돼.'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욕실로 들어간 소유정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말았다.
샤워를 마친 후에야 그녀는 잠옷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어차피 벗어야 할 옷이니, 입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은 완전히 어두웠고, 소유정은 눈을 크게 뜨고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불에서 풍기는 낯선 백단향이 그녀의 몸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소유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꼭 움켜쥐고 몸을 더욱 단단히 감쌌다. 오직 두려움으로 가득 찬 두 눈동자만 문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가 복도의 희미한 불빛을 등지고 들어왔다. 시원한 백단향이 소유정의 코끝을 강하게 자극했고, 희미한 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남자는 바로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한 듯 그는 문을 닫아 외부의 마지막 광원까지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방 안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고, 소유정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남자는 무언가 눈치챈 듯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소유정은 그의 무게 때문에 매트리스가 약간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소유정은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시선에는 심사숙고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갑자기 남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약간 거친 촉감으로 그녀의 볼에 붙어 있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소유정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곧바로 그의 손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옷을 입지 않았어?"
남자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상상했던 바람둥이 특유의 경박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였다.
소유정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잠옷이 없어서요…"
그 말에 유성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머니는 이 여자가 성격이 차분하고 집안일을 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걸까?'
남자는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소유정은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남자의 숨결과 함께 자신의 온몸이 완전히 휘감기며 스며드는 듯했다. 마치 자신의 의식마저 더 이상 그녀의 통제하에 있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