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습한 폐 창고 안. 주위는 너무나 음산하고 으스스했다.
"고지혁, 나 납치당했어. 빨리 와서 구해줘…"
강서아는 창고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몸에는 몽둥이에 맞아 생긴 상처들이 가득했고, 새하얀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가득했다.
현재, 그녀는 간신이 주머니에서 예비용 휴대폰을 꺼내 남편 고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 묻어났고, 공포에 질려 말까지 더듬었다.
"강서아, 너 아직도 이 수작이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 온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강서아는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 났다. "진짜야. 그 사람들 총도 가지고 있어. 나…"
"적당히 해!"
고지혁은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잘라버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날 다시 네 곁으로 불러 들이려고 이런 거짓말까지 해? 나 지금 응급실이야! 은설이 심장병이 발작했다고. 강서아. 제발 부탁인데, 이제 철 좀 들면 안돼?"
"나…"
"A국에 돌아 오면 그때 다시 얘기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마. 바쁘니까 끊어."
뚜뚜뚜… 통화가 끊겼다.
강서아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기 시작했고, 심장이 빠르게 식어 갔다.
그녀는 극도의 절망에 빠진 사람은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이 사실임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불과 반나절 전만 하더라도 두 사람은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임은설이 전화로 심장통을 호소했고, 고지혁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강서아를 이국의 낯선 거리 한복판에 내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항으로 향했다.
머릿속에 온통 첫사랑 임은설만 가득했던 그는 홀로 해외에 남겨진 아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고지혁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아의 머리에 마대가 씌워졌고, 강제로 승합차에 끌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폐 창고에 던져졌고, 납치범들은 그녀를 향해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뺨도 퉁퉁 부어 올랐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쯤, 때리다 지쳤는지 놈들은 창고를 떠났고, 강서아는 그제야 기회를 틈타 도움을 구했다.
그때, 강서아의 카톡에 임은설이 보낸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속, 고지혁은 온몸이 흠뻑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은설을 부드럽게 품에 안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을 지키는 듯 조심스런 모습이었다.
초조함, 안타까움, 공포, 여러 잠정이 잔뜩 뒤섞인 고지혁의 긴장한 얼굴, 그건 강서아가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강서아는 마치 날카로운 비수에 심장이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으나 눈가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죽음의 위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와중에 남편이란 사람은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이런 결혼 생활은 더 이상 유지할 가치가 없었다.
눈물을 닦아낸 그녀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반드시 이혼 할거야!'
그때, 문밖에서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납치범들이 돌아 온 게 분명했다.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그녀는 머리 위 좁은 환기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른 이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보단 자신을 믿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무릎이 너무 아팠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환기창 아래에 있는 나무 상자에 기어 올라 기름때가 가득한 환기창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왔다. 녹슨 철조망이 그녀의 팔을 긁었고, 흘러 나온 피가 빗물에 섞여 아래로 흘러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도착한 곳은 진흙으로 질척이는 골목이었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길이 너무 미끄러웠다.
위에서 뛰어 내린 그녀의 두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발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숨이 멎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고 그저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골목 안으로 향했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도로가로 달려 나왔을 때, 롤스로이스 팬텀 한대가 빗속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젠장! 그년이 도망쳤어!"
"빨리 쫓아!"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납치범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서아는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어 롤스로이스 팬텀 앞을 가로막았다.
빗속에서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이내, 차창이 내려가더니 운전사가 고개를 내밀고 욕설을 퍼부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강서아는 뒷좌석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짙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거기에 너무나 잘생긴 얼굴까지 더해져 지적이고 고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온 몸으로 강렬한 기세를 뿜어 내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 갈 수 없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강서아의 눈에서 흘러 나온 눈물이 빗물에 씻겨 아래로 흘러 떨어 졌다. 그녀는 팔을 들어 눈물을 훔치고 나서 다급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 납치 됐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까만 눈동자에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쓴 여자가 들어 왔다. 처참한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을까? 그의 깊고 어두운 눈빛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그때, 뒤에서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욕설이 들려왔다. 납치범들이 그녀를 쫓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