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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몸정

위험한 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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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예뻤다. 한보라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원하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찬소리를 흔하게 들었다. 그런데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의 배신에 유산까지... 예쁜 얼굴에는 상처를 입었고 심혈을 들인 사업도 망해 버렸다. 평판이 바닦까지 떨어진 한보라는 어둠과 절망속에 자신을 가뒀다. 무엇때문일까? 이 모든 것은 차성우가 나타난 후부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은 참 위험한 물건이었다!

제1화 예상치 못한 임신

"축하 드려요. 임신 6주차시네요!"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임신 결과지를 건넸다.

결과지를 건네 받은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믿을 수 없었다. 겨우 한 번 잤을 뿐인데 임신이라니?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차성우한테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맞는 걸까? 아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건 그도 원치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차성우는 그런 인간이었다. 아이를 이용해 그를 협박하는 나쁜 여자로 생각할 게 뻔했다. 그리고 임신했다고 해서 이혼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겨우 부여잡고 결과지를 가방에 넣은 채 병원을 나섰다.

세련된 외제차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창이 반 쯤 열려 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그 사람의 얼굴은 언제 봐도 참 잘생겼다.

그는 어딜 가나 시선을 끄는 타입이었다. 지금도 길가를 지나는 여자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다들 그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내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 차성우였다. 돈도 많고 잘생긴 외모를 갖춘 그의 매력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차성우를 곁눈질 하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무시한 채 보조석에 앉았다.

차성우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끝났어?"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병원 이사장이 서명한 계약서를 한 장 내밀었다.

"김 원장님이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원래 계약서는 혼자 받으러 갈 생각이었다. 가는 도중에 우연히 만난 차성우가 병원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당신이 맡아 줘." 차성우의 말은 좀처럼 반박하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평소 말이 없는 편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계약서를 살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거두었다.

조금이라도 말대꾸를 했다간 오히려 내가 더 피곤해지니까 차성우와 있을 때면 나는 늘 침묵을 지켰다. 물론 익숙해지기까지는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해도 져서 어둑어둑한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지만 질문할 용기는 없었다. 난 차성우가 지금처럼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이젠 익숙해졌다.

그때 가방 안에 들어있는 임신 결과지가 생각났다.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까? 힐끔 차성우를 쳐다보았다. 도로에 고정된 차가운 그의 시선을 보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저기⋯" 땀으로 젖은 손을 부여잡고 겨우 입을 뗐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뭔데?" 차성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내가 무언가 말하려는 걸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물론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날 이런 식으로 대했다.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이제 그러려니 해졌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좀처럼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차성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난 바로 다시 입을 닫았다.

"여보세요? 다현아, 무슨 일?"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의 사랑밖에 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그저 이방인에 불과했다.

차성우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강다현에게만 다정한 남자였다. 전화 받는 모습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강다현이 무슨 말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갑자기 차성우는 속도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울지 말고 얘기해 봐. 바로 거기로 갈게.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잠시 동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그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차갑게 돌아왔다. "내려."

부하 직원을 명령하는 말투에 나에게는 거절의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킨 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 없는 결혼은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차성우와 나의 결혼도 그렇다. 차성우가 사랑하는 여자는 오직 강다현 뿐이었다. 그에게 나는 방해꾼에 불과한 존재였고 줄곧 나와 헤어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2년 전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차할아버지께서 차성우에게 나와의 결혼을 강요하셨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집안 어르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그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차성우는 나와 이혼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겨우 집에 도착했다. 화려하고 큰 저택이었지만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포영화에 나와도 될 법한 집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서둘러 샤워한 뒤 침대에 털썩 누웠다. 임신 때문인지 입맛도 없었다.

잠에 들기 직전 밖에서 차가 멈추고 누군가 내리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차성우인가?

오늘밤은 강다현과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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