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 3년 동안, 심예은은 서운길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마음속에는 온통 첫사랑이었고 심예은에 대해서는 오직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정밖에 없었다. "아이만 낳으면 놔 줄게." 심예은이 출산의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서운길은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전용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행을 가고 있었다. "누구를 좋아하든, 나를 사랑하든 말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 거야. 당신에게 빚진 건 이미 다 갚았으니까. 앞으로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심예은이 떠난 후, 서운길은 그녀의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 방 안에는 그녀의 흔적이 가득했고 가는 곳마다 그녀의 향기가 나는 듯했다. "나한테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없을까?"
심예은은 김정정이 블로그에 업로드 한 영상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여러분, 잘 보이시나요? 수박에서 제일 맛있는 중간 과육은 항상 제 몫이랍니다."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제 선물은 꼭 챙겨오는 자상한 사람이죠."
"여러분 이것 좀 보세요. 놀랍지 않아요? 저를 위해 직접 기도드리고 받아온 부적이라고 하네요."
영상 속에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자랑을 늘어놓는 김정정의 가녀린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순결하고 티 없이 맑은 얼굴에 환한 미소는 같은 여자가 봐도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심예은은 스토커처럼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김정정의 남자 친구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김정정의 소소하지만 즐거운 일상과 그녀의 남자 친구와 함께하는 행복한 매일을 기록한 영상은 심예은을 우울함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알고 보니 매달 보름, 크리스마스 이브, 발레타인 데이, 심지어 심예은의 생일에도 그 두 사람이 함께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서운길은 3년 동안 그녀와 한번도 명절을 보낸 적이 없었다.
데스 카운트다운이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계정은 심예은이 유일하게 팔로우한 계정이었다.
불길한 의미인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욕실 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는 것이다.
희미한 조명이 비추는 방에, 샤워를 마치고 넓은 어깨에 수건만 한 장 두른 서운길이 나타났다.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변함없이 빛났다.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은 심예은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남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서운길을 봤던 날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가 자발적으로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다.
서운길의 할머니 서향순 여사가 중병에 걸려 하루라도 빨리 손자를 보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 이 집으로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서운길은 신혼집에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고 해완 별장에서 거의 지내다시피 했다.
그가 심예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허울 안에 갇혀 꾸역꾸역 생활하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그 한 번에 임신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의 운에 달렸어." 서운길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대체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심예은이 더 깊게 고민하기도 전에, 서운길이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가녀린 몸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허리에 걸친 수건을 바닥에 던진 그가 무릎으로 심예은의 다리를 힘껏 벌렸다.
"즈윽-" 하는 소리와 함께 치마가 찢어졌고 그녀의 둥근 맨 가슴이 그대로 공기 중에 드러났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굴욕적일 수 없었다.
남자의 잔혹하고도 무자비한 손길에 잔뜩 겁을 먹은 심예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버둥쳤다.
"서운길 씨. 그만해요. 싫어요, 싫단 말이에요!"
심예은이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치자 서운길이 잡고 있던 그녀의 발목을 놓아줬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이런 방식으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심예은은 온갖 굴욕과 패닉에 휩싸였다.
서운길의 차가운 비웃음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들려왔다. "당신이 나한테 약을 먹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예상했었어야지. 그러니까 참아."
그의 잔인한 말에 심예은은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움찔하더니 어두운 얼굴을 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땐 저도 취했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 악!"
마지막 음절이 빗나가더니, 그녀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서운길은 빠르게 낚아챈 그녀의 손목을 머리 위로 고정시키고 아무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무자비한 움직임은 단번에 그녀의 제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고, 심예은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극심한 고통이 그녀를 압도했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저항할 힘마저 남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욕구를 분출시킨 후, 서운길은 가쁘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집어 허리에 둘렀다. "이번엔 뭘 좀 배웠나 봐?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송장보다 발버둥치는 재미가 더 낫네." 조금은 쉰 듯한 서운길의 목소리는 악의로 가득 찼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 빠르게 저택을 나섰다.
서운길은 그녀와 잠자리를 하기 전후에 반드시 샤워를 했다. 마치 그녀가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심예은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삶을 참고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녀는 단지 그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장난감일까?
아니면 서씨 가문의 후계자를 낳아야 하는 도구일까?
활짝 열린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냉기를 느낀 심예은은 몸을 더욱 심하게 떨며 이불을 단단히 여몄다.
그러나 그녀를 떨게 만든 건 차가운 밤공기만이 아니었으니. 처참하게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가슴 사이로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들어와 상처를 건드렸다.
그녀가 8년 동안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남자는 점점 낯선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3년 전, 서씨 가문이 주최한 연회에서 심예은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고,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와 서운길이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었다.
그녀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그녀의 오빠와 서씨 가문 사람들이 동시에 방에 쳐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방법은 없으니, 서씨 노부인의 주도하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서운길은 심예은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약물을 투여했다고 확신했다.
심예은은 처음에 서운길의 분명한 적대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두 사람인데, 설령 그녀가 정말 약을 탔다 해도 이렇게까지 자신을 원망할 일인가?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운길에게 있어 그녀는 단지 그와 김정정 사이를 방해한 악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끔 그녀는 김정정의 영상 속 서운길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영상 속 친절하고 세심한 그의 모습은 완벽한 남자 친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그녀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아마 평생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심예은이 욱신거리는 몸을 끌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 아래 선 그녀는 그녀의 몸 위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몸을 떨었다.
거울에 비친 하얗게 질린 얼굴은 백지장 같았고, 몸 곳곳에는 멍든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흐느끼며 눈물을 터뜨렸다.
그날 밤, 심예은은 불안에 떨며 잠들어야만 했다.
꿈속에서 그녀는 어릴 적 서운길과 함께 뛰어놀던 모습을 꿈꿨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사이가 이 지경은 아니었는데.
다음 날 아침, 심예은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장 아주머니가 빠르게 아침을 식탁에 내왔다.
저택에서 오랫동안 심예은을 모신 장 아주머니는 누구보다 그녀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식탁 앞에 앉은 심예은은 천천히 접시에 놓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사모님, 어젯밤에 대표님을 설득해 저택에 묵게 하지 그러셨어요?" 장 아주머니는 심예은이 가여운 나머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서씨 가문 본가의 오래된 고용인으로, 심예은과 서운길이 어떻게 원수가 되었는지, 그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본 사람이었다.
심예은은 마음이 아려왔지만 곧바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가 아무리 서운길을 곁에 붙잡아 놓아도, 그의 마음까지 붙잡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운길의 마음은 해완 별장에 묶여있었다. 그곳에 사는 여자야말로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니.
장 아주머니는 조금 망설이더니 주저하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회사 업무 때문에 바빠 그런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빠듯하겠어요..."
장 아주머니는 3년 전 서씨 본가에서 이곳으로 와 두 사람을 돌보고 있었다. 서운길과 심예은의 결혼 생활이 어떤지 장 아주머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예은을 가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억누르고 빵을 한입 베어 문 심예은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그래, 그 사람은 회사 업무 때문에 집에 돌아올 시간도 없이 바쁘지. 하지만 아무리 바쁜 상황에서도 그는 김정정을 위해 시간을 냈다. 게다가 일부러 광운사까지 가서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평안을 기원하는 부적까지 빌었으니.
아무리 업무가 바빠도 기념일은 빼놓지 않고 보낸 두 사람이였다.
그때, 심예은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장 아주머니가 주방을 나서자 심예은은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자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권유리였다.
"유리야, 나 이혼하고 싶어." 심예은이 조금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윤정은 다시 태어났다. 전생엔,나쁜 남자한테 버림받고 못된 계집한테 모함 당하고 처가집의 구박까지 가해졌고 그녀의 집안을 파산시키고 정신상태마저 온전치 못하게 되었다. 결국 임신 9개월때 차사고로 죽게 되었는데 죄 짓은 놈은 행복한 가정에 엄청난 재력가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번 생에 최윤정은 깨달게 되었다. 생명의 은인이고 일편단심이고 전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최윤정은 이 나쁜 남자와 못된 계집을 짓밟고 다시 가문의 영광을 되찾아 럭셔리한 삶을 살려고 한다. 유일한 다른 점이라면 전생에 감히 쳐다볼수도 없던 사람이 지금은 먼저 머리숙여 손을 내밀고 있다. "최윤정,신혼은 안되도 재혼은 내 차례가 된거 아니야?" "..."
서한별은 손톱으로 주태현의 등을 파고들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은은한 조명하에 매혹적으로 반짝거렸고 끈적거리는 욕망이 뜨겁게 공기에 퍼졌다. 그녀의 벌어진 입술은 주태현의 어깨를 탐했고, 이내 둘은 깊은 사랑을 나눴다. 몸의 열기에 서한별은 눈을 가늘게 떴고 주태현의 부드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 곧 결혼해.” 이날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 들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서한별은 지금 임신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으로 주태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모든 것은 그녀만의 착각일 줄이야. 결국 서한별은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고, 3년 후 다시 주태현 앞에 나타났을 때 곁에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주태현은 흔들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었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별아, 우리 결혼하자.” 서한별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주태현 씨, 죄송하지만, 저 약혼했어요.”
눈이 많이 내린 한겨울. 목운산장 뒷산 깊은 골목에 무정하게 버려진 한 여인의 모습. 사마음, 마(魔)의 음(音)이란 뜻을 땄다. 그녀의 이름. 몸이 땅과 부딪치는 순간, 사마음은 눈을 번쩍 떴고 이어 몸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현실이라는 자극을 받게 되었다. “나, 환생한 거야?” 전생의 사마음은 질식하여 죽게 되었다. 상서부의 첫째 딸인 사윤설이 돌아온 후, 둘째 소저인 사마음은 모든 사랑을 잃게 되었다. 이야기는 길었다. 아무튼 사마음 악몽같은 삶은 사윤설이 상서부로 들어온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고 오늘은 전생에 사윤설의 계략에 빠져 다리가 부러진 날이었다. 하얀 눈은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숨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움직일 수 없는 무력감에 사마음의 마음은 점점 차가워졌다. “사마음!!!”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마음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응하였다. “여기요!” 장화가 눈을 밟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고 큰 그림자가 눈 앞을 가렸다. “어쩌다... 자신을 이리도 불쌍하게 만든 것이냐.” 그러면서 남자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사마음을 품에 않았다. 이혁! 이름난 간신. 전생에도 이 남자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수많은 화살에 찔려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사마음은 그의 소매를 꽉 잡았다. 그 동작에 이혁의 마음은 급격히 조였고 빨개진 눈으로 사마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내가 널 지킬 것이니.” ‘이번 생은 내가 널 지킬 것이야.’ 사마음의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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