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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젖어든다

너에게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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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예림은 남자친구의 배신을 당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그녀는 한 남자와 신비로운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튿날 남자의 할머니한테 서로 안겨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렇게 할머니의 재촉하에 두 사람은 바로 결혼을 했고 서로 존중하고 조용한 부부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강아지처럼 온순한 남편이 갑자기 늑대가 된 것이다. 매 번 소예림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한도겸은 바로 기사처럼 나타나 그녀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었다. “한도겸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예림 씨의 운이 좋았나 보죠.” 한도겸은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소예림이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월드 재벌 랭킹 1위-한도겸. “한도겸 씨, 당신 억만장자였어요?” 한도겸은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소예림의 허리를 붙잡고 자기 다리에 앉히고 그녀의 턱을 잡았다. “많이 놀랐어요?” 소예림은 한도겸의 잘생긴 얼굴과 섹시한 입술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한~ 키스를 주었다.

제1화 아침에 있었던 일

이른 아침, 눈을 뜬 소예림은 옆에서 자고 있는 낯선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공황에 빠진 그녀는 제일 먼저 이불을 들춰보았다. 다행히 옷차림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당혹감과 후회가 뒤섞인 감정으로 옆에서 자고 있는 남자를 조심스레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 꽤 잘생긴 얼굴이었다.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예림은 어젯밤 일을 기억하려 애썼다.

부모님의 결혼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냐는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던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남자친구가 사촌언니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큰 충격에 휩싸인 그녀는 그 길로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믿어왔던 남자친구 김동민의 배신은 너무나 큰 상처였다. 하지만 그 이후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잔뜩 술에 취해 낯선 남자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간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했다.

남자가 깰까 봐 그녀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 나오려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우아한 노부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노부인은 방문 앞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소예림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노부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장 할머니...?"

자신을 알아본 그녀는 깜짝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소예림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눈치였다. '아, 예전에 그 여자애구나.'

소예림은 5살 때 우연히 가족과 떨어져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마침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던 장미선과의 인연은 그때 시작되었다. 똑똑하고 밝았던 소예림에게 그녀는 금세 애정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연락이 끊겼다.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다

"예림이? 예림이야? 어머, 숙녀가 다 됐네!" 장미선의 차가운 표정이 금세 풀어졌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여전했다. "괜찮니? 이 나쁜 놈은... 어?"

장미선은 침대 위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다 말고 멈칫했다.

남자는 잠에서 깨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배고픈 짐승이 탐욕스러운 눈으로 먹잇감을 노려보는 것처럼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소예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서둘러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할머니, 너무 걱정마세요. 저희 아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미선은 위로하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두드렸다. "얘, 걱정하지 마. 이 할미만 믿으렴!" 장미선은 손자 한도겸이 아직 짝이 없어 늘 걱정스러웠다. 낯선 여자의 정체가 소예림이었을 줄이야! 그녀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어 두 사람을 엮을 작정이었다.

소예림을 대할 때와 달리 손자 앞에서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투가 싸늘했다. "한도겸! 이게 대체 무슨 망신이야? 할미를 매일 걱정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이게 예림이처럼 착한 여자애나 건드리고 말이야. 그것 밖에 안 되는 애였니?"

장미선은 손자를 나무란 뒤 좀 더 사무적인 어조로 자신의 속뜻을 밝혔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두 사람은 최대한 빨리 결혼하도록 하려무나."

한도겸과 소예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할머니!" 한도겸이 항의했다. 그가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장미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싫다고 할 권리가 없어. 남자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예림이만 괜찮다면 둘이 결혼하도록 해."

항상 통제적이었던 할머니의 지시를 당장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못했다. 당황한 한도겸은 고개를 살짝 돌려 소예림에게 눈치를 주었다.

긴장감이 팽팽한 두 사람 사이에 낀 그녀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피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알고 보니 이 낯선 남자가 장 할머니의 손자였다니, 세상도 참 좁다. 어쩜 이런 우연이!

마침 결혼을 압박하는 부모님을 떠올린 그녀는 남자를 다시 차분히 살펴보았다. 외모도 준수하고, 다른 남자들보다 더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정말 그와 결혼한다면 장미선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의 편이 되어줄 터였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소예림은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결혼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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