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름이 누구냐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 신비로운 회사의 대표, 최고 용병의 여왕, 천년에 한 번 나타난다는 과학 천재... 그런데, 이런 자유인이 쓸모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아니, 그럴 리 없어. 진아름의 결혼식 전 날, 그녀를 자신의 도망간 신부로 오해한 부현승은 다짜고짜 시청으로 끌고 가 결혼 증명서를 받았다. 어리둥절한 진아름은 그렇게 도시 최고의 권력자 부현승의 아내가 되었고 우연히 부현승의 할머니까지 구하게 되었다. ‘아니, 나 내일 결혼하는데?’ 모든 일을 다시 되돌리고 싶은 진아름은 부현승과 이혼을 요구했고 두 사람은 합의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약혼자인 강혁이 부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진실이 밝혀지는데... 자신의 진짜 신분을 되찾은 강혁은 시골 출신에, 교육을 받지 못한 진아름을 혐오하기 시작했고 파혼을 요구하며 굴욕을 주었다.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 강혁은 후회가 밀려왔고 다시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부현승이 진아름 곁에 나타나며 경고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숙모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아, 아파..."
무언가 단단한 게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진아름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곧이어 다리 사이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악!"
의자에 취선초가 잔뜩 놓여 있다는 걸 잠시 잊어버린 진아름은 그냥 앉아버렸고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살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취선초는 마취 성분이 강력한 풀로, 이 정도라면 앞으로 6시간 동안 꼼짝 없이 몸이 마비될 지도 몰랐다. 상황을 파악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오늘 영업종료.
이를 악물고 엉덩이에 박힌 가시를 겨우 빼낸 그녀는 당장 가게 문에 임시 휴무 표지판을 달려 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큰 키의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유리 문을 열고 꽃집으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주위의 공기마저 차가워졌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단호한 표정을 한 그의 눈에는 경멸과 증오, 그리고 파괴적인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의문의 인물 등장에 진아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손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좋은 목적으로 온 건 아닌 듯 했다.
진아름에게는 적이 많았다. 임무 수행 중에는 변장을 하고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실제 신분이 노출될 위험은 언제나 따라다녔다. 조직에 배신자가 있을 지 모른다는 경계도 늦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한 적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컨디션으로는 섣불리 행동하기 어려웠다. 겉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님, 꽃 보러 오셨어요?"
"하!"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밖으로 나섰다.
진아름은 본능적으로 남자의 등을 내려쳤지만 탄탄한 몸에 그녀의 주먹은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었다.
좁고 낡은 옛날 거리에 십 여 대가 넘는 검은색 고급 외제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백 여명의 굳은 표정을 한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작은 꽃집이 마피아의 소굴이라도 된 듯한 모양새였다.
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서둘러근처 가게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음 순간 마동석이 "어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빵을 물고 나올 듯 했다.
나름 상당한 실력자임에도 란흥시에서 자신을 노리는 이 정도의 거물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대낮에 이런 장관이라니! 누구인지는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데다 무척 대담한 자임에 틀림없었다.
남자는 다소 거칠게 그녀를 차 안으로 던진 후 옆자리에 앉았다.
차 문이 닫히자 압도적인 그의 존재감은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진아름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조심스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찾았다. 어떻게든 구조 요청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녀의 핸드폰은 남자에게 빼앗아 갔고 진아름은 거칠고 긴장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적어도 그 쪽 이름과 절 납치한 이유는... 악!"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목을 움켜 쥐었다.
조금이라도 더 저항했다가는 목이 끊어질 지도 몰랐다.
"수작 부릴 생각 마! 한 마디 더 하면 죽여버릴 테니까!"
진아름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차마 반격할 힘이 없었던 그녀는 가만히 앉아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빨리 파악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타난 일은, 진아름의 예상 밖이었고 더 이상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남자는 그녀를 시청으로 데려간 것이다.
눈 깜박할 사이에 혼인 신고에서 두 사람의 이름과 서명이 되어 있었다.
다시 차 안으로 던져진 진아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손에 들고 있는 혼인 결혼 증명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남자의 이름이 부현승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란흥시에서 이 정도의 부와 권력을 가진 부현승은 오직 딱 한 사람이었다.
란흥시 최고의 부자 부씨 가문의 현 주인.
당황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다.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남자는 천사와 악마의 결합물이었다. 물론 천사는 외모를 말하고 있었고 악마는 그의 잔폭한 성격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진아름은 살면서 이렇게 극과 극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진짜 실수로 이 거물의 심기를 건드렸다 해도 암살 또는 복수가 아니라 강제 결혼?
"저, 부현승 씨..."
"시끄러워!"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부현승은 진아름의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왼손 약지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이전처럼 우리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려. 더는 나 건들지 말고!" 부현승은 명령조로 잘라 말했다.
진아름은 말문이 턱 막혔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의 할머니를 무슨 수로 행복하게 한단 말인가?
"부현승 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요... 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녀의 목은 다시 그의 손에 짓눌려 있었다.
부현승의 인내심은 바닥 났다. 그의 말 한 마디 마디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 쳤다.
"나랑 결혼하려고 할머니를 속이더니 내가 결국 알겠다고 하고 청첩장까지 다 뿌린 마당에 결혼식에 안 나타나? 당신이 날 쫓아다니다 왜 도망쳤는지도 관심 없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나한테 타격이 있지도 않아. 하지만 할머니가 그 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그대로 널 놔줄 수는 없지. 지금 위독하시니 당장 가서 착한 손주 며느리 역할 해 드려. 또 다른 수작을 부리면 진씨 가문 전체를 등지게 될 테니 각오해!"
그제서야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사람 잘못 찾았어요.'
누구인지는 몰라도 도망간 약혼녀와 자신을 착각한 게 틀림 없었다.
진아름은 내일 약혼자 강혁과 결혼하기 위해 고향인 명가 마을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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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2차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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