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합의서에 사인한 후 고씨 가문에서 나가!" 예단은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남편과 고씨 집안에 헌신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남편의 배신과 시댁의 무시일 뿐이었다. 진신으로 진심을 얻을 수 없으니 그럼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거야. 이혼? 그래, 동의하지. 하지만 위자료로 재산 절반을 줘야 해! 예단은 천억의 돈을 들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내연녀인 하지우는 질투가 가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쓰레기 남편을 버리고 예단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해커, 노린산의 전설 레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학교수, 게다가 재벌들의 전용 주얼리 디자이너... 배도훤은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며 그냥 귀엽기만 했다. "우리 단이, 언제 나랑 결혼해 주겠나?"
"얼른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고씨 가문에서 나가!"
예단의 발치에 서류 하나가 툭 떨어졌다. 서류 아래쪽의 서명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시우.
고시우는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예단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서 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고영서를 바라보았다.
"시우 씨는 어디 있죠? 왜 시우 씨가 직접 와서 말하지는 않는 거예요?" 예단이 물었다.
고영서는 마치 예단이 터무니없는 질문을 한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내 동생이 너 같은 애한테 신경 쓸 시간이 있는 줄 알아?"
고영서는 예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예단의 아름다운 외모는 부정할 수 없었다. 고영서조차도 예단을 처음에 보고 감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단의 아름다운 외모는 언제나 가려져 있었다. 그녀의 숱 많은 앞머리와 큰 검은 뿔테 안경에 그녀의 조그마한 얼굴이 거의 가려졌고, 늘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균형 잡힌 몸매를 완전히 감춰 버렸다.
고영서는 예단을 집안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주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시우는 회사 일 때문에 바빠. 너한테 낭비할 시간이 없는 애라고!" 고영서가 짜증을 냈다.
예단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드렸다. "일 하느라 바쁜 거예요? 아니면 하지우 씨와 시간 보내느라 바쁜 거예요?"
예단이 씁쓸하게 말했다.
고시우가 10년 동안 사랑한 여자 하지우! 3년간의 위태로운 결혼 생활 동안 먹구름마냥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당시, 하지우가 결혼을 앞두고 사라져버린 탓에, 고씨 가문은 A시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다.
예단은 고시우의 할아버지 고필두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어린 시절 고시우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망설임 없이 고시우와 결혼했다.
결혼식 후, 예단은 화려한 옷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완벽한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시우는 결혼 이후로 예단과 거리를 두면서, 단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다.
"그걸 알았으면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말고 진작 물러났어야지!" 고영서가 코웃음을 쳤다. "지우는 해외 명문 음대를 졸업하고 유명 교향악단에 바로 들어갔어.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라 예의도 바르지. 고등학교를 자퇴한 너랑 비교나 되는 줄 알아?"
예단은 지난 3년 동안 이런 가혹한 말들을 모두 견뎌왔다.
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 예단은 시부모님을 잘 모셨고, 고영서를 열심히 도왔다.
돈을 흥정망정 쓰는 고영서는 돈이 부족할 때마다 예단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고영서가 남편에게 폭행 당할 때마다 고씨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늘 모르는 척했다. 예단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고영서는 어떤 험한 일을 당했을지 몰랐고, 순조롭게 이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날 무시하고 잘난 척을 해!'
이혼 합의서의 조건을 살펴보던 예단은 갑자기 서류를 닫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혼은 동의하겠지만, 시우 씨 재산의 절반은 나에게 줘야 해요."
놀라 눈을 크게 뜬 고영서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꿈 깨! 고씨 가문에 시집 오면 네 팔자가 필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넌 한 푼도 못 받고 나가게 될 거야!"
예단은 차분하게 앞치마를 벗고 헐렁한 홈웨어의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몸매가 돋보이는 매끈한 상의와 청바지가 드러났다.
예단은 안경을 벗고 미소를 지으며 고영서를 바라봤다. "결정은 형님이 내리는 게 아니죠. 시우 씨와 직접 얘기해 볼게요."
고영서는 촌스럽기만 하던 예단이 눈깜짝할 사이에 분위기가 확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자 깜짝 놀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고영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예단은 이미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딜 가? 당장 이리 와서 서류에 서명하지 못해!" 고영서가 소리쳤다.
분노에 사로잡힌 고영서는 서류를 움켜쥐고 멀어져가는 예단에게 던졌다.
종이가 공중에 펄럭이며 예단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그녀는 재빨리 종이 자락을 붙잡았다. "나는 몸싸움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여자랑은요."
고영서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예단은 이미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어딘가 위협적인 예단의 모습에 고영서는 한 걸음 물러나며 목소리를 높여 경고했다.
"뭘 하려고? 여긴 고씨 가문이야! 나를 건드리면 네 다리를 분질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단은 이미 그녀 앞에 다가와 섰다. 예단은 고영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혔다. 고영서는 저항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예단이 목을 정확하게 내리치자 온몸의 힘이 풀리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예단은 고영서의 머리를 누르며 그녀를 붙잡은 손에 더 힘을 줬다.
예단은 한 손으로 고영서의 입을 벌리고, 다른 손으로는 서류 종이를 공 모양으로 뭉쳤다. 고영서의 공포에 질린 시선 속에서 예단은 뭉쳐진 종이를 그녀의 입에 집어넣었다.
"이 종이 쪼가리가 그렇게 좋으면 직접 먹어 보든가요!"
예단이 손을 거두자, 고영서는 책상에 주저앉았다. 예단은 힘 있고 단호한 걸음걸이로 고씨 가문 저택에서 걸어나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고시우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
오후 4시가 되자 코니세그 한 대가 능숙하게 교통체증을 헤치고 나가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찾았어. 성심 대극장에 있네. GPS 설정해 놨어."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약간 불안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단아, 성급하게 행동하지 마. 고시우는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짜증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예단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왜 그러겠어."
"그야..." 전화 반대편에서 서희연이 반박했다. "너는 평소에는 침착한 애지만, 열 살 때 너를 구해준 사람이 고시우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잖아. 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왜 자신을 희생하려는 거야? 그 사람을 위해 진짜 신분과 능력까지 숨기고... 대체 왜 그러는 건데?"
"그만해!" 예단이 소리쳤다. "그 사람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너, 우리 집안 상황이 지금 얼마나 복잡한지 알잖아."
서희연이 단지 그녀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닫고 예단은 목소리를 낮췄다. "걱정 마. 그냥 이혼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뭐? 맙소사..." 서희연이 헉 소리를 냈다.
서희연이 큰 소리를 내기 전에 예단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엑셀을 세게 밟으며 미소를 지었다.
예단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부가티를 능숙하게 피한 다음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검은색 부가티의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코니세그를 따라가. 박천주에게 다음 교차로에서 저 차를 막으라고 알려."
비서는 차 속도를 높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저 차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남자는 등을 기대고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중얼거렸다. "오랜만이야, 트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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