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주년 전날 밤, 박재훈은 경매장에서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캐시미어 블루 사파이어 귀걸이' 를 낙찰 받았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내가 가장 미안했던 사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귀걸이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라이브 방송 화면을 바라보던 허윤아는 그 한마디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내일이 바로 그녀와 박재훈의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고, 그가 드디어 마음을 바꿨다는 생각에 허윤아는 그 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본 박 노부인도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손자가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이제야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거야."
다음 날, 결혼 3주년 당일. 허윤아가 풍성한 음식을 준비 마쳤을 때 박재훈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박재훈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서류 가방을 받아 들고 무릎을 꿇어 구두를 벗겨준 후, 실내화로 갈아 신겨주었다. 그 모든 동작은 이미 몸에 배인 듯 익숙했다.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차렸어? 오늘 무슨 날이야?"
훤칠한 키에 날렵한 이목구비를 가진 박재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푸는 간단한 동작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은 늘 허윤아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녀는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칫하더니, 되물었다. "잊었어?"
'아니, 그럴 리가. 날 다시 붙잡기 위해 그 600억짜리 귀걸이를 낙찰 받은 거 아니었어?'
하지만 박재훈은 여전히 의아해 하면서 물었다. "허윤아, 내가 뭘 기억해야 하는데?"
"그 귀걸이, '우주의 별빛' 이라고 불리는 그 귀걸이... 네가 낙찰 받았잖아." 허윤아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귀걸이를 네가 어떻게 알아?" 박재훈은 놀란 듯 되물었다. 집안일 밖에 할 줄 모르던 아내가 사회의 뉴스들을 알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곧이어 박재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솔직히 허윤아의 외형조건은 정말 좋았다. 갸름한 얼굴형에 가지런한 눈썹과 또렷한 눈매. 하지만 늘 꾸미지 않고 수수한 차림으로 집안일만 하니, 정말 촌스럽고 나이 들어 보였다.
어쩌면 박씨 본가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가정부보다도 더 초라해 보였다.
박재훈의 물음에 허윤아의 눈에는 다시 기대가 차 올랐다. "방송으로 봤어. 그 귀걸이 정말..."
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재훈이 탁 잘라 말했다. "그건 예라한테 주는 거야."
첫사랑 소예라가 언급되자, 박재훈은 목소리까지 다정해졌다. "예라가 드디어 나랑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돌아왔는데, 내가 당연히 선물을 준비해야지."
그 순간, 허윤아는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방송에서 말한 그 가장 미안했던 사람이... 소예라라고?'
'3년 동안 성심껏 돌보고도 단 한 번의 선물조차 받지 못한 난 그럼 뭐였는데?'
허윤아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박재훈, 그때 네가 누구때문에 사고가 나서 눈이 멀었는지 잊었어?"
몇 년 전, 소예라가 사소한 일로 격노를 하여 운전 중이던 박재훈의 주의력을 혼란 시키는 바람에 차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박재훈은 눈이 멀었고 회복 가능성도 낮다는 의사 말에 소예라는 그날 바로 핑계를 대고 외국으로 도망쳤고 그 후 아무 소식도 없었다.
당시 둘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박씨 가문은 이미 청첩장을 돌린 상태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소예라와 그녀의 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그때 허윤아가 나서지 않았다면 박씨 가문은 이미 이 도시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네가 뭘 알아! 그건 예라 잘못이 아니야!"
박재훈은 단 한 마디라도 소예라를 비난하는 말은 용납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도 다 예라 덕분이야. 예라가 내 눈 수술을 해줬거든. 누가 실수로 입밖에 내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까지도 예라가 날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고 있었을 거야..."
"뭐라고?" 허윤아는 순간 멍해졌다.
박재훈이 시력을 잃은 후, 박 노부인의 부탁으로 분명 허윤아가 신경이식 수술을 맡았고, 그를 살리기 위해 세 번이나 대수술을 했었다. 수술 후에도 허윤아는 밤낮 없이 박재훈을 간호했으며 자신의 신의 정체를 숨기고 오직 박재훈에게만 정성을 퍼부었었다. 그러니 그가 다시 이 세상을 보게 된 건 모두 허윤아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공로를 소예라가 가져갔다고?
"너... 확신해? 근거도 없는 그 말을 정말 믿냐고?"
"당연하지! 예라는 임세준 교수님의 제자야. 전세계에서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박재훈의 표정은 감격과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임세준 교수님의 제자는 나잖아. 언제부터 소예라가 그 신분을 사칭하고 다녔던 거지?'
허윤아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문득 임새준이 반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소예라도 이 타이밍에 돌아온 거겠지.
죽은 사람은 증언할 수 없으니 허윤아가 아무리 말해도 진실은 묻힐 게 뻔했다. 박재훈은 그녀의 정성스런 보살핌 속에서 다시 시력을 회복하고 박씨 그룹을 계승하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허윤아는 더 뭐라 하기에도 힘들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물었다. "그럼 오늘 왜 돌아온 거야? 소예라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허윤아는 앞치마를 홱 벗어 던졌고 마음 한구석에서 절망이 번져갔다.
그러자 박재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하게 말했다. "나 이제 지쳤어. 우리 이혼하자. 결혼 전에 3년만 함께 하기로 합의했잖아. 나도 3년 동안 널 많이 참아줬어."
'참아줬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이렇게 뻔뻔하게 내뱉을 수 있지?'
분명 그녀가 3년의 청춘을 바쳤고 몸과 마음이 다 지치도록 헌신하며 박재훈을 다시 정상적인 사람으로 이 세상에 끌어올린 것인데!
하지만 박재훈은 그런 허윤아의 고통엔 관심조차 없는 듯 미리 준비해놨던 이혼 서류를 던져주며 말했다. "읽어봐. 문제 없으면 서명하고. 나랑 예라는 너 때문에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니, 더 이상 예라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허윤아는 빠른 속도로 서류를 훑었고 마지막 항목인 이혼 보상에 시선이 머물렀다. 외곽에 팔리지도 않는 허름한 아파트 한 채, 그녀가 늘 장 보러 타고 다니던 고물 폴로 차량 한 대, 그리고 보상금 6억 원.
참 기가 막혔다.
눈을 멀게 한 장본인에게는 600억짜리 귀걸이를 선물해 주고, 정작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자 아내인 허윤아에게는 고작 6억이라니...
고작 6억, 심지어 그녀가 수술 한 번 해주는 보수보다도 적은 금액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박재훈을 돌보기 위해 허윤아는 신분을 감추며 아주 많은 수술을 거부했었다.
"보상이 부족하면..."
박재훈은 허윤아가 울며불며 매달릴 줄 알았다. 하지만 허윤아는 냉소를 짓더니 망설임 없이 이혼 서류에 서명을 남겼다.
그 뜻밖의 전개에 박재훈은 괜히 찝찝해 났다. '고아 출신인 주제에 뭐가 이렇게 당당해?'
허윤아는 서명을 마친 서류를 박재훈에게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서명했어. 근데 박재훈,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마."